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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가객(歌客) 김현식…그의 삶과 열정 그리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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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 나의 성장기

  ㆍ [벌판다방]의 가수

  ㆍ 1집이 나오기까지

  ㆍ 작은 보금자리를 꾸미고

  ㆍ 얼굴없는 가수

  ㆍ 가수는 나의 천직

  ㆍ 연재를 마치며

 

- 김현식님의 자필 수기 전문입니다.

 

 

88년말 나는 제4집 앨범을 냈다. 타이틀곡은 <언제나 그대 내곁에>와 <사랑할 수 없어> 두곡으로 했다. 또한 하모니카 연주곡으로 <한국사람>도 수록해 욕심을 냈다. 독집으로만 4번째의 앨범을 냈으니 나도 어느새 중견의 가수가 돼간다는 느낌이었고 중견이라면 이제 남은 삶을 좀더 엄숙하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그해말 나는 10년이 넘는 가수생활에서 처음으로 큰상을 받았다. 日刊스포츠가 시상하는 골든디스크 상을 수상한 것이다. 언더 그라운드로 자주 방송을 안타서 그런지 이런 상은 처음이었고 더구나 한동안의 공백 뒤에 다시 재기의 무대를 갖고 활동한 직후에 수상한 것이라 정말 감격적이었다.

또한 디스크 판매량이 가장 큰 기준이 되는 이 상을 받게 해준 팬들에게도 무척 고마웠다. 88년은 지금 생각하면 연초의 재기공연에서부터 연말의 골든디스크 수상까지 나에게는 여러 면에서 운이 좋은 해였다.

이듬해 초 나는 신촌블루스의 앨범작업에 참여했다. <골목길> <환상> <블루스 메들리>등 세곡이 그 앨범에 포함된 나의 노래다. 앨범 발표와 함께 조인트콘서트도 가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재기공연 이후 너무 음악에 매달렸던 탓인지 갑자기 건강이 악화됐다. 주로 밤에 움직이고 줄담배를 피면서 곡을 만들고 또 주로 지하에 많이 설치된 녹음실에서 취입을 하고 연습하는 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남들보다 좀더 건강에 신경을 써야하는데 재기 이후 좋은 음악을 해야겠다는 초조감이 나를 몸 돌볼틈없이 쥐게 만들었었다.

나는 꼬박 한달동안을 입원해 있었다. 물론 입원이래야 무슨 특별한 치료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모든 스케줄을 돌리고 안정과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전부였다. 퇴원 후에 나는 체력의 필요성을 절감한 만큼 운동을 시작했다.

중고등학교때만 해도 운동에는 만능이었던 나는 나의 몸에 찌든 모든 불건강한 것들을 다 뽑아내겠다는 듯이 동부이촌동 한강고수부지에서 새벽공기를 마시며 달렸다. 그러고 나면 나의 몸에 죽었던 세포들이 하나하나 다시 깨어나서 숨쉬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한동안 쉬는 사이에도 무수한 팬들의 안부전화와 편지는 나에게 가수가 천직이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다.

어떤 여고생은 엽서 뒤에 비오는 날 음악이 흐른 어느 거리를 화가같은 솜씨로 그려놓고 그 위에 예쁜 글씨로 <비처럼 음악처럼>의 가사를 적어 보냈고 어떤 팬은 나도 모르게 찍은 나의 사진들을 예쁜 사진첩 속에 찍은 날자와 함께 붙여 보내기도 했다.

휴식중에 건강을 회복한 것 이외에도 나에게 하나의 수확이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럭무럭 커가는 나의 아들 완제와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완제는 막 일곱살이 되면서 몰라보게 달라져 갔다. 아마 곧 학교를 들어가게 된다는 생각은 그만한 나이의 아이들을 달라지게 하는 모양이었다.

조금씩 아빠를 이해해가는 것도 같았으며 혹시나 내가 집에서 술이라도 마실라치면 그러지 말라고 제법 준엄하게 타이르기까지 했다. 역시 자라는 아이들은 세파에 찌든 어른들의 스승이 된다는게 맞는 얘기인 것 같았다. 아내 역시 충실한 내조자로서 또한 보이지 않는 매니저로서 나의 음악생활을 도왔다.

불행하게도 평범한 가수의 평범한 가족인 아내와 완제는 자신들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않아 독자들에게는 그들의 사랑스런 모습을 자랑할 수가 없다.

그러나 가끔씩은 나는 미국의 누이집에 계신 어머니가 그리웠다. 어머니는 몇년전 미국으로 이민간 누이의 집으로 떠나가셨다. 언제나 외토리였던 나에게 어렸을때부터 따뜻한 사랑을 주었던 어머니와 누이가 나에게서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가끔은 나를 더욱 외롭게 했다.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나는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될 수 있으면 밤무대를 삼가고 창작과 콘서트에 전념했다. 김영사장님이 리드하는 동아기획 소속이었던 많은 동료들은 음악에 대한 같은 자세로 그때마다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

나는 나의 음악을 정리한다는 의미의 5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집이 나의 음악의 시작이고 그 뒤의 앨범들이 나의 음악을 진행시켰다면 이제 5집으로 한 시기의 나의 삶과 음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나에 대한 뜻밖의 소문들이 퍼져갔다. 내가 간암으로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다는 거였다. 원래부터 방송출연은 잘하지 않아 사람들이 나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고 더구나 콘서트마저 뜸한 사이 나에 대한 그런 소문이 퍼졌었나 보다. 심지어 매일 보는 친구들마저도 어느날 나를 만나면 병원에서 어떻게 나왔느냐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뿐만 아니라 친척들마저도 전화를 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난리들이었다. 비록 몸이 약해져 한동안 활동의 공백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문을 이길 방법은 특별하게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방송에 나가 나는 건강하노라고 외치고 다닐수도 없고 그렇다고 오는 전화마다 일일이 소리칠 수도 없었다.

조용히 침묵하는 길뿐이었다. 사실 그 소문이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친 것은 별로 없지 않은가. 조용히 음악을 만들고 침묵하는 길뿐이었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소문은 점차로 퇴색해갔다. 그럴즈음 나는 색다르다면 색다른 일을 시작했다.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친구 강인원이 영화음악을 같이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곡은 강인원이 만들었고, 나 이외에도 가수로서 권인하, 신형원 등이 같이 참여했다.

영화는 신인 곽재용 감독이 만들었고 젊은 배우 강석현, 옥소리 등이 출연했다. 이렇게 해서 만든 것이 <비오는 날의 수채화>였다. 오랜만에 그룹사운드가 아닌 보컬그룹 형태로 노래를 불렀다.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강인원이 만든 곡과 노래가 무척 예뻤다. 영화의 주제가를 묶어서 앨범을 내면서 나는 또 어느새 <비오는 날의 수채화>팀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오던 나의 5집 앨범을 냈다. <넋두리>를 타이틀로 그동안 생각했던 멜로디와 가사를 모았다. 자켓의 사진도 사진작가 김중만씨가 멋지게 찍어주었다. 재킷의 앞면에는 나의 얼굴사진을 넣었고 뒷면에는 김중만씨와 독특한 감각으로 나의 발 사진을 넣었다.

해진 청바?熾?운동화, 그위에 올려놓은 나의 포동포동한 발. 나는 참 많이도 걸어왔고 이제는 잠시 쉴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렇게 걸어온 길을 막 돌아보려고 정지해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타이틀 곡 <넋두리>는 그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내용의 가사만큼이나 멜로디 또한 느리고 낮아 마치 노래 전체가 하나의 회고조 소설같았다.

4집 이후 거의 2년만에 나온 앨범인데도 나를 기억하는 팬들이 구입해주어 아주 좋았다. 5집에는 또한 복음성가로 <할렐루야>도 집어넣었다. 그야말로 이제 중년의 나이에선 가수로서 앨범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만든 앨범이었다.

5집을 내고도 주로 동부이촌동의 집에서 칩거했다. 집에서 외국의 록비디오도 보고, 나 이외 가수들의 음악도 듣고, 가끔씩 집을 찾아오는 외판원들과도 얘기하고, 동네 가게방 아저씨들, 아파트 청소원 아주머니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가수로서 가수가 아닌 사람들과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들은 나에게 무척 소중했다.

이제 나의 얘기만이 아닌 그들의 얘기도 귀담아 들어야 할 나이기 때문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방송에도 잘 나오지 않는 내가 가수라면 깜짝 놀랐다. 무척 부자고 잘 생기고 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 나같이 평범하고 그들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사람이 가수라는 것은 일종의 충격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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