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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 나의 성장기

  ㆍ [벌판다방]의 가수

  ㆍ 1집이 나오기까지

  ㆍ 작은 보금자리를 꾸미고

  ㆍ 얼굴없는 가수

  ㆍ 가수는 나의 천직

  ㆍ 연재를 마치며

 

- 김현식님의 자필 수기 전문입니다.

 

 

그녀는 나의 애인이자 엄한 누나가 되었다. 어떤 때는 때이른 첫키스와 달콤함을 내게 맛보여 주었으며, 어떤 때는 무섭고 표독스러움으로 엇나가는 나를 질책했다. 나는 그녀 옆에서 행복했으나 가끔은 부담스러운 선생님과 함께 있는 것같이 불편하기도 했다.

몇달 후 나는 후기 명지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석차는 전교 3등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공부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명지고를 택한 것도 당시 유명하던 명지고의 밴드부 때문이었다.

나는 입학하자마자 선생님들의 만루에 아랑곳하지 않고 밴드부에 들어갔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숨어서만 하던 음악을 마음껏 해볼 참이었다.

그러나 밴드부의 졸병시절은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다. 악기에는 거의 손도 대보지 못하고 연습실 청소, 주전자 나르기 등 선배들의 심부름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러고서도 걸핏하면 단체기합이었다. 학교 밴드부의 군기가 군대보다도 더 엄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선배들이 연습을 끝내고 나간 연습실을 청소하다가 갑자기 간절하게도 트럼펫이 불고 싶어졌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트럼펫을 잡고 불어대기 시작했다.

물론 부는 법도 제대로 몰랐지만 아무거나 누르면서 닥치는대로 불어대니 트럼펫 소리 비슷한 것이 세어나왔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정신없이 열중하고 있는데 등뒤에서 '임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3학년 선배 중에서도 무섭기로 소문난 선배가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선배는 다짜고짜 내 뺌을 때렸다. '악기를 연주하고 싶어서 밴드부로 왔는데 한번 불어본 것도 죄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는 나도 대들었다.

급기야는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선배와 새카만 후배가 싸움을 벌였다. 선배들이 몰려오고 나는 아마 연습실 어느 구석에서 각목을 찾아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사건으로 나는 밴드부를 쫓겨나게 되었다. 퇴학을 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치 머리를 깎인 삼손처럼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다. 공부도 학교도 음악도.

나는 자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학은 검정고시로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채 자퇴서를 제출하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집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일이 오늘의 나를 가수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을 가겠다는 막연한 생각과 집에서의 입장 때문에 제일 검정고시학원에 등록을 하기는 했지만 이때부터 내가 생?▤歐藪〈?본격적인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학교를 그만둔 나는 제일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다녔으나 점차 공부에는 흥미를 잃었다. 학원을 빠지는 날이 많아지는 만큼 나는 점점 종로통 깡패가 되어갔다. 세력다툼으로 싸우기도 하고 돈이 떨어지면 뒷골목에서 지나가는 아이를 겁주어 빼앗기도 했다.

그렇게 갈데없는 건달로 지내던 어느날 나는 어릴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이종사촌형 집에 놀러갔다. 형은 당시 홍익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캠퍼스가수로 꽤 명성을 얻고 있었다. 형은 오랜만에 찾아온 나에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줬다. 아마 비틀스의 노래 몇곡과 당시 유행하던 포크송들이었다고 기억된다.

사촌형의 노래는 얼마간 잊고 지냈던 음악에 대한 갈망을 내게 다시 불러 일으켰다. 기타를 치며 노래부르는 사촌형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종로에 들러 새 기타를 샀다. 갖고 있던 돈을 다 털고도 모자라 손에 차고 있던 시계까지 풀었다. 그리곤 그날부터 집에 틀어박혀 맹연습에 들어갔다. 숱한 종로의 친구들이 전화도 하고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지만 나는 틀어박혀 기타만 쳤다. 어쩌면 더이상 아무것도 매달리 것이 없었던 그때 내 음악은 삶의 마지막 모험이었는지도 몰랐다.

웬만큼 기타솜씨가 붙었다고 생각된 어느날, 나는 결연히 기타를 메고 종로로 나갔다. 그러나 이제는 건달 김현식이 아니라 가수 김현식으로서였다.

당시 종로에는 '벌판'이라는 뮤직다방이 있었다.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곳이었는데, 많은 통기타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불렀고 또 가수지망생들을 위한 오디션이 수시로 있었다. 나는 바로 그 오디션에 나가기로 한 것이다.

첫번째 무대만큼 떨리는 것이 있을까. 사람들과 서로 마주 선다는 것, 나는 혼자이고, 그들이 ?㈆돛繭遮? 것, 더구나 그들은 나를 판단하기 위해 눈과 귀를 번뜩이고 있고, 나는 그들 앞에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외롭고 두려운 일이었다.

관객이래야 지배인과 종업원 몇명이었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끝 감각마저 무너져서 기타코드가 제대로 안잡힐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그래도 눈에 사람들이 구별되고 손끝의 감각이 살기까지 기다린 후 나는 천천히 기타를 뜯으며 노래를 불렀다. 첫번째 노래는 호세 펠리치아노의 <한때 사랑이었네>(Once There Was A Love)였다. 막상 노래를 시작하니까 노래 속에 빠져들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나는 연이어 비틀스에서 CCR로 두곡을 더 불렀다.

그리곤 조용히 기타를 내려놓고 긴장감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제는 나를 지켜본 사람들이 나를 판단할 차례가 된 것이다. 결정권자인 듯 싶은 지배인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식, 기타는 형편없는데 노래는 제법인걸"

지배인의 이 한마디 말에 그날부터 나는 <벌판다방>의 '가수'가 되었다. 가수래야 출연료도 없었고 세끼 밥사주고 가끔 저녁때 술사주고 지배인의 기분에 따라서 차비 몇푼씩을 받는게 고작이었지만 매일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부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무척 행복했다. 오전에 연습하고, 오후에 나가 노래 부르고, 밤에는 나와 비슷한 무명 통기타 가수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다 알겠지만 70년대 후반은 통기타를 든 포크 가수들의 시대였다. 종로의 <벌판>에서 명동의 <쉘브르>로, <썸씽>으로 나의 출연무대는 자꾸 넓어져 갔다. 그런 업소들을 들락거리다 보면 가끔 당시 <그건 너>나 <한번쯤>등으로 최고의 스타였던 이장희 선배나 송창식선배를 만날 수 있었다. 어쩌다 그분들이 등이라도 한번 두드려 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어느??이승희라는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잘은 몰랐지만 기타를 아주 잘친다는 그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같이 듀엣을 하자고 제의했다. 같이 듀엣을 하면 노래를 잘 부르는 나의 장점과 기타를 잘치는 그의 장점을 서로 살릴 수 있다는 거였다.

우리는 그날부터 듀엣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듀엣이래야 특별한 이름도 없었고, 그냥 김현식과 이승희였다.

듀엣으로 몇개의 음악다방을 전전하고 있던 어느날, 이승희가 헐레벌떡 연습실로 뛰어들어왔다. 국제호텔 나이트클럽의 출연요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국제호텔 나이트클럽은 서울역 앞에 있었는데 송창식, 이장희 등이 출연하던 당시로서는 최고의 나이트클럽이었다. 우리는 그 선배들의 무대 사이사이를 떼워나가는 들러리 역할을 맡은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드디어 무대다운 무대에 선다는 생각에 밤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도 계속 내 첫사랑의 여인은 나를 찾아왔었다. 그녀는 이미 연세대 철학과에 다니고 있던 어엿한 여대생이었다. 그녀는 노래를 끝내고 내려오는 내게 다가와서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라고 다그쳤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얘기를 듣기 싫어했고, 그녀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 도망다니기도 했다. 이때 그녀와 나의 길이 다르다고도 생각했고 음악에 대한 나의 꿈이 대학은 안중에도 없게 했기 때문이다.

어느날부터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 그녀가 나타나지 않던 한동안은 그려려니 했는데, 계속 그녀가 안오자 이상하게도 허전해지더니, 그것은 곧 마음 한구석의 쓸쓸함으로 바뀌었다. 사랑을 잃어버린 아픔같은 것이 그런지도 모른다.

 
 

 

 

그를 기억하고자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2001년 01월 21일 ~ 2019년 04월 22일… … 전체방문자 252,808  오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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