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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식님에 관한 평론가들의 글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서 자랐다.

국민학교 5학년 때인가 서울 삼청국민학교로 전할을 올 때까지 지금 생각하면 시골 생활이 참 좋은 것 같다.

파아란 하늘. 아주 깜깜했던 밤. 별이 유난히도 많았던 밤. 아름답던 추억이다.

그 시절 추억이 지금도 음악에, 나의 음악 생활에 커다란 희망을 준다.

 

세월은 지나, 그럭저럭 나도 인생의 반을 어느 새 넘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30이 넘은 것이다.

언젠가 만난 음악생활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나의 광기, 내 몸속에 있는 그 어떤 광기가 음악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

음악, 음악은 내 인생이다. 그리고 내 전부다.

노래를 하다 못하면 쫓겨나고 그러면 또 더욱 열심히 노래하고... 그냥 음악이 좋아 무작정 좋아 시작했다.

고생도 많이 했다. 누구나 음악 10년 이상 한 사람이면 이런 과정을 겪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배가 고파야 노래가 더 잘되는 것 같다.

나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특히 방황, 좌절 여러 가지 좀 나쁜 경험이다.

처음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이젠 이쯤에서

나의 방황도 좌절도 끝을 내야 할 것 같아서이다.

 

나의 사랑은 언제나 실패였다.

첫사랑은 누구나 그러하듯 철이 없었고 생각해 보면 짜릿했다.

아마 어디에선가 그녀도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과거는 과거다. 지난 일은 세월에 잠겨 잊혀져 간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아픈 기억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 아픈 기억들을 좋은 음악으로, 깊은 마음으로 진실된 노래를 부르고 싶다.

 

좋은 세상, 좋은 음악, 좋은 사랑..

내가 바라고 절실히 원하는 것이다. 지금가지 세 장의 앨범을 냈다.

네 번째 앨범에서 나의 모든 음악생활의 전부를 보이려고 노력했다.

밝은 마음으로, 깊은 사랑으로 기대해 주기 바란다.

 

김현식 88. 9.10

   

   
 

김현식,

결코 많이 들어 본 가수는 아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는 '언더그라운드 씬'의 기수로서 군림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다시 말해 김현식은 훌륭한 가창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가수는 많지만 가창력을 지닌 가수가 ?愎?우리 나라 풍토아래 김현식은 기나긴 가뭄 끝에 쏟아지는 비처럼 마냥 싱그러움이 있고 그리고 다른 여느 가수에서는 좀처럼 느 끼지 못하는 진한 혼이 베어 있다. 흔히들 김현식을 가리켜 '대중적인 가수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대중적이라 함은 그의 음악이 우리의 현실에서 볼 때 약간은 어렵다는 말이다. 즉, 수준이 있는 음악성을 그에게서 느끼게 된다.

 

그는 '색깔이 있는 남자'다. 색깔이 있다는 말은 예술세계에서는 개성이 강하다는 뜻으로 연 결된다. 만약에 가수가 개성이 없다면 무슨 맛이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김현식이 지닌 매력은 매콤한 겨자처럼 톡 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게 일품 이다.

 

김현식은 또 '끼가 있는 사내'다. 그가 만약 끼가 없었다면 벌써 노래를 그만 두었을지도 모 른다. 남들처럼 야간업소에 서는 것도 아니므로 그의 주머니는 항상 비어 있고 춥지만 그에 게는 음악이라는 보약이 있기에 시금치를 먹은 뽀빠이처럼 항상 힘이 샘솟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그는 '멋을 아는 친구'다.

멋이란 사람을 돋보이게 하지만 자??잘못 멋을 부리면 오히려 안한것만 못하다. 이것을 멋에 대한 감각이라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김현식은 자신을 가꿀 줄 아는 센스가 있다. 다시 말해 멋을 안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멋이 넘쳐흐른다.

 

더러는 김현식을 '건방진 녀석'이라고 한다. 건방지다는 말을 잘못 해석하면 자만에 빠졌다 고 해석할 수 있겠으나 그는 자만이 아닌 건방짐이 있다. 만약 예술을 하는 예술인이 건방 짐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예술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중에게 야합하다 보면 당분간은 생명을 연장시킬 수는 있겠지만 곧 식상한 대중들이 외면하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현식 의 건방짐은 대중을 이끌어가며 항상 새것을 추구하는 원동력이라 해석된다.

 

아무튼 김현식은 2년만에 와신상담 4집을 갖고 심판대에 섰다.

가수생활 10년을 기념하며 임한 이 음반은 과거 어느 앨범보다 더 원숙한 음악성과 보다 더 한 개성을 접하게 되는데 앨범을 턴테이블에 올려 논 순간 분명 당신은 김현식의 독특한 매 력에 빠져 들 것이다.

 

글 . 선성원 (?×渥脂逵?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1980년의 어두운 사회를 위안할 때 슬며시 발표된 김현식의 데뷔 앨범을 주목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무려 5년 뒤 들국화가 화려하게 데뷔할 즈음 그의 두번째 앨범이 나왔을 때 그의 이름은 바로 80년대 대중음악계의 가장 중대한 사건인 이른바 `언더그라운드'의 동의어가 될 채비를 완료했다. 그리고 그가 지병으로 이승을 마감하고 유작이 된 여섯번째 앨범이 요절의 신드롬과 함께 밀리언 셀러의 폭풍을 몰고 왔을 때 80년대 중후반의 이 신화는 저물었다.

 

대부분의 그의 노래가 록의 정통주의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을지는 몰라도 그는 적어도 세계에 대한 태도의 측면에서는 완벽한 로커(rocker)였다. 그는 방송과 음반회사의 전횡을 무시해 버렸으며 대중의 소녀적 취향에 대해 일고의 배려가 없었다.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저 60년대 우드스탁의 끝없는 자유를 동경했다.

 

김현식에 대한 최대의 아쉬움은 그가 탁월한 록 보컬리스트였던 사실에 반해 뛰어난 싱어송라이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데뷔 앨범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제외하면 그의 작곡 능력은 2류에 머물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록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이러한 약점은 그의 탁월한 백 밴드 봄여름가을겨울과 송홍섭을 위시한 베테랑 세션들이 메꿔주었다.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앨범인 이 앨범에 이르러 그는 짧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자신의 삶의 내면을 일필휘지로 내보인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임박한 임종을 암시하는 가운데 흐르는 짧은 독백과 한 호흡으로 제시되는 그 특유의 상승하는 주제선율, 그리고 박청귀의 일렉트릭 기타와 호응하며 포효하듯이 일어서는 후렴의 사자후- 그 자신에 의한 이 <넋두리> 한 곡만으로 그가 펼쳤던 날개가 얼마나 많은 이의 감관을 휘감았는지를 알아차리는 데 충분하다.

 

그는 두번째 앨범의 <어둠 그 별빛>이나 세번째 앨범의 <비처럼 음악처럼> 같은 대표적인 곡에서 드러나듯이 블루스에 기인한 슬로 템포의 록의 비경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그 여유로운 템포 속에서 그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소리꾼의 힘과 기교를 아로새겼으며, 그로부터 기인하는 보컬의 카리스마는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게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김현식이 우리에게 각인됐던 그 시대는 랩을 제외한 서구의 모든 문법이 우리 대중음악의 골간을 장악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사조의 단순 수입상에 머물지 않고 그 자신만의, 어쩌면 나아가 우리의 숨결을 불어 넣고자 했다. 네번째 앨범의 <우리네 인생>이나 이 앨범의 <도시의 밤>과 같은 전형적인 로큰롤 곡에 면면히 흐르는, 무어라 규명할 수 없는 '향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향기 없는 꽃>을 통해 이렇게 읊조리는 것이 아닐까?

"겉이 화려할수록 진실 메말라 있고 / 겉이 화려할수록 향기 간 곳 없으니 / 향기 없는 꽃이여 / 그대의 진실은 은밀함에 있어 / 부러움 한 몸에 받을 수있다오..."

 

-강 헌 (대중음악평론가)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문세씨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 프로에서 추모방송이 있었습니다.

그가 생전에 남겼던 일기형식의 글중에 이런대목이 기억납니다.

" 함께 얘기를 나눌 만한 친구들이 없다......"      

이 대목을 읽어가던 이문세씨의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바뀌던 기억이 납니다.

 

간경화가 악화되어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에  예정되어있던 공연에 나가기위해 그는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몰래 빠져나옵니다.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빌려입고서.....

 

공연장에서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힘없이 축 늘어진 모습으로 마이크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채 "비처럼 음악처럼" 을 부르던 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공연이 끝나고 그는 다시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그가 그의 음악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  아니, 어쩌면 그는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혼잣말처럼 음악을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생전의 마지막 콘서트에서의 모습)

 
   

어찌되었건 저는 그것에대해 알려고 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그의 음악을 들으며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그의 음악을 들으며 이유를 알 수 없는 평온을 얻는 것에 만족할 뿐입니다.

 

가수가 아닌 인간 김현식으로 그를 기억하고 느끼는것에 만족합니다.

 

-이 사이트를 만든이

   
 

 

 

그를 기억하고자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2001년 01월 21일 ~ 2019년 12월 14일… … 전체방문자 256,205  오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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