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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가객(歌客) 김현식…그의 삶과 열정 그리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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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 나의 성장기

  ㆍ [벌판다방]의 가수

  ㆍ 1집이 나오기까지

  ㆍ 작은 보금자리를 꾸미고

  ㆍ 얼굴없는 가수

  ㆍ 가수는 나의 천직

  ㆍ 연재를 마치며

 

- 김현식님의 자필 수기 전문입니다.

 

 

84년 나는 제 2집의 준비에 들어갔다. 1집이 가수로서 음반을 내고 데뷔하는데 의미를 뒀다면, 2집은 한명의 가수로서 이제 자신의 음악을 펼쳐간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어서 무척 신경이 쓰였다. 더구나 음반은 그때까지도 별반 방송에는 관심이 없었던 내가 가장 선호하는 팬과 만날 수 있는 통로였기 때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타이틀은 자작곡 <사랑했어요>로 했고, <어둠 그 별빛>, 그리고 작사가 양인자씨가 노래말을 준 <바람인줄 알았는데>도 수록했다. 자작곡이 아닌 곡으로는 박두영 작사작곡의 <그대 외로워지면>을 유일하게 수록했다.

이렇게해서 나의 두번째 앨범은 84년 10월부터 레코드가게의 쇼윈도에 걸리??됐다. 나는 무척 초조한 마음으로 만4년만의 앨범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를 기다렸다.

<사랑했어요>에 대한 반응은 다운타운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노래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나타날 줄은 나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도심 곳곳의 음악다방에서 "도대체 저 노래를 부르는 김현식이 누구냐"라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라디오 음악프로에도 이 노래를 신청하는 엽서가 쏟아졌고 음반도 날개 돋친듯이 나갔다. 이 노래 하나로 하루아침에 나는 대중적인 스타가 된것이다.

이 노래가 유명해지자 이 노래를 둘러싼 얘기도 무성해졌다. 이 노래의 내용이 나의 진짜 사랑이야기라는 얘기도 있었고 그때까지도 내가 이 노래 속의 여주인공 격인 여자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 노래의 얘기가 실제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젊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지나간 사랑의 대한 아픔과 그리움을 짙은 소울과 블루스풍의 멜로디에 실어 혼신의 힘으로 부른 노래였다. 그때나 이제나 내 노래의 영원한 주제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했어요>의 히트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새 그룹을 조직하는 일에 착수했다. 물론 이때까지 그룹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국민학교 선배이고 나중 '들국화'라는 그룹을 조직한 전인권 선배와 '동방의 빛'이라는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한 적도 있었고 재즈 연주자인 동시에 작곡가인 정성조씨가 리드하는 그룹 '정성조와 메신저스'에서 싱어를 맡았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좀더 젊은 사람들과 함께 전혀 새로운 그룹을 만들고 싶었다. 며칠을 고심하다 일단 그룹의 이름은 나의 데뷔곡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노래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름을 그대로 땄다.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일단 간판부터 내 건 격이었다.

평소부터 나와 같이 음악을 하고 싶어하던 친구들이 찾아왔다. 김종진, 전태관, 유재하... 다들 자기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던 친구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요절한 유재하다. 재하는 선천적으로 타고 난 것같은 풍부한 음악성을 가지고 있었다. 좀 약해보이는 외모 속에서도 언제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비록 재하가 후배였지만 나는 그의 섬세한 감각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부터 배운 것도 많았다.

그러나 재하는 어느날 우리팀을 떠났다. '형, 미안해요. 하지만 형에게 암만 혼나더라도 이 그룹을 떠나야만 하겠어요'라고 말하고 그는 악기를 챙겨서 연습장을 나갔다. 지금도 그때 그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과 활동하면서 나는 3집 앨범의 준비에 들어갔다. 내가 소속한 동아기획에는 나와 비슷한 음악방향을 가진 많은 선후배들이 몰려있어 음악활동을 서로 도왔다. 신촌블루스, 들국화, 한영애 등등 그때까지 언더그라운드로 일반에게 분류되던 우리는 그래도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뭉쳤다고 자부한다. 바로 그것 때문에 수많은 밤들을 소주잔을 기울이며 얘기하고, 싸우고, 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김민기 선배를 만났었다. 김민기 선배는 이미 음악을 넘어 연극 쪽에서도 일하고 있었고 한국 음악의 한부분을 이끌던 큰 사람이었다.

김민기 선배는 나를 보자마자 내 음악의 방향을 충고하는 얘기를 했다. 나는 그말에 오래도록 술을 마시며 김민기 선배와 격론을 벌였다. 김민기 선배는 '민족'을 음악의 주제로 설정하고 있는 것 같았고 나는 '민족'보다 더 큰 것이 사랑이라고 이에 맞섰다. 결코 결론이 나지않고 이날의 논쟁은 끝났는데 나는 다만 '민족'에 대한 김민기 선배의 적극적인 사고들을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었다.

86년 나는 <비처럼 음악처럼>을 타이틀로 나의 세번째 앨범을 냈다. <사랑했어요>로 이미 많은 음악팬들에게 알려진 상태에서 그런지 이 앨범에 대한 반응도 대단했다. 그중에서도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조금씩 나직이 읊조리는 듯 시작하는 멜로디의 타이틀곡 <비처럼 음악처럼>에 대한 반응은 굉장해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나의 대표곡으로 서슴지않고 이 노래를 꼽는다.

나는 될 수 있으면 방송출연을 자제했던 편이다. 처음에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몇번 출연한 것 이외에 될수 있으면 자제해왔다. 몇번의 제의를 거절하다보니 나중에는 출연요청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대의 카메라와 잘 정비된 방송의 무대에 서면 나는 왠지 답답해졌다.

녹음실에서 눈을 감고 해드폰으로 나의 목소리를 확인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부를 때나 라이브의 무대에서 나의 노래에 울고 웃는 많은 팬들을 확인하며 부를 때와 방송 스튜디오에서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공간 속에서 치밀하게 계획된 대로 노래를 부르다 보면 자연스러운 나의 음악적 에너지가 자꾸 죽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방송출연을 자제하다보니 나는 점점 '얼굴없는 가수'가 돼갔다. <사랑했어요>나 <비처럼 음악처럼>이 계속 히트하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랑받고 있을 때도 김현식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레코드 자켓에 있는 사진에서밖에는 없었으니 말이다.

3집의 성공과 함께 나는 본격적으로 라이브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수많은 콘서트에서 노래를 했다. 그룹 신촌블루스와 같이 공연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신촌블루스에는 이정선, 엄인호 등 평소부터 좋아하던 선배와 후배들이 있었고 그들이 한국적인 블루스의 형식을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에도 평소부터 관심이 있었다.

또한 이때 나는 그룹 돌개바람을 조직해 같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나와 별개로 독자?岵막?활동하면서 그때그때 서로 필요할때 같이 공연을 하게 됐고 돌개바람은 밤무대를 나와 같이 활동했다. 이렇게 되다보니 김현식이라는 이름은 <신촌블루스>와도 <봄 여름 가을 겨울>과도 <돌개바람>과도 같이 붙어다니게 되어 마치 나는 그룹사운드 전문 보컬리스트가 되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이때 나는 비로소 거의 모든 생활들을 음악으로 채우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연습과 작곡, 녹음, 공연으로 참으로 눈코뜰 새가 없었다.

그러나 87년 11월말 나는 지금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을 맞았다. 나를 비롯해서 들국화의 전인권, 허성욱 등이 마약상용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향정신성 의약품관리법, 대마관리법 등의 적용으로 몇개월동안 구속됐던 것이다.

구속기간동안 나는 내 삶과 나의 음악에 관해서 생각했다. 사촌형의 어깨너머로 기타를 배울 때부터 드디어 인기를 얻은 가수가 되고 지금 이렇게 되기까지 세월은 그 시간만큼의 고통과 기쁨과 함께 참 많이도 흘러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나간다면 맑은 노래를 부르는 건강한 가수가 되고 싶었다.

88년 2월 나는 재기의 콘서트를 63빌딩에서 열었다. 나를 사랑하는 팬들을 실망시킨데 대한 사죄의 뜻으로 나는 삭발을 했었다. 나를 아껴주던 팬들이 다시 무대에 선 나를 비웃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마저 가지고 나는 무대에 올라 천천히 나와 노래 <비처럼 음악처럼>을 불렀다. 공연장에는 6천여명의 관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고 노래가 끝났을때 나도 모르게 눈에 고인 눈물 너머로 관중들이 환호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함성이 나의 귀에는 아득하게 들렸다. 팬들은 나를 용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노래로서 그들에게 용서받은 것이었다. 가수생활중 수십번의 콘서트를 했지만 그날만큼 기억나는 콘서트는 없었다. 나는 나를 용서한 팬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불렀고 그들은 박수로서 다시 나의 가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그를 기억하고자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2001년 01월 21일 ~ 2019년 08월 22일… … 전체방문자 254,579  오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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