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화면       발자취       앨범소개       유작시       책/비디오       평론       수기       벗들       보도자료       사진       잠든곳       인트로       커뮤니티

 

  ㆍ 나의 성장기

  ㆍ [벌판다방]의 가수

  ㆍ 1집이 나오기까지

  ㆍ 작은 보금자리를 꾸미고

  ㆍ 얼굴없는 가수

  ㆍ 가수는 나의 천직

  ㆍ 연재를 마치며

 

- 김현식님의 자필 수기 전문입니다.

 

 

나는 가수라고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얘기한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또한 처음 있는 일이다.

日刊스포츠에서 처음 내 얘기를 싣자고 했을 때도 나는 내가 그렇게 스타인가 하는데 대한 의구심이 생겨 망설였다. 물론 음악이외의 방법으로 나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의 성격탓도 있지만.

이제 쑥스러운 고백을 시작한 만큼 모든 것을 숨김없이 솔직히 털어놓겠다. 그러니까 서른에서 마흔?瑛? 내 나이또래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옛 생각과 꿈과 희망들을 나를 빌려서 얘기하고 싶다. 그래서 그 사람들과 같이 경험했던 사람들의 삶을 내 나름대로 다시 정리해보겠다.

나는 올해 서른 네살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충남 홍성에서 조그마한 사업을 하시며 농사를 짓는 유지였다. 외할아버지는 충북 옥천에서는 만석꾼으로 통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영문학을 공부하러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 유학까지 갔다온 학자였다.

아버지는 혼자 서울에서 여러가지 사업을 했기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의 많은 부분을 어머니와 함께 옥천의 외가에서 보냈다. 국민학교도 옥천에 있는 죽향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육영수여사가 다녔던 학교로 뒷산의 대나무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릴 때부터 나는 고집이 세고 독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국민학교 입학식날 내가 없어져 찾아보니 상급생들 여러명과 학교 뒤에서 싸우고 있었다는 얘기는 집안끼리 모이면 아직도 단골로 등장하는 화제다.

서울에서 태어나 나는 서울촌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나는 나를 놀리는 거의 모든 녀석들을 방과 후에 때려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독기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나는 아버지가 있는 서울로 국교 4학년때 전학을 오게 되었는데, 그 학교가 삼청국민학교이다. 그때 가수 전인권이 그 학교의 6학년이었다. 그때는 전인권이 누군지 몰랐는데 나중에 같이 음악을 하다 알게 됐다. 아무튼 묘한 인연이다.

6학년이 되던해 나는 다시 수유국민학교로 전학을 해야만 했다. 문교부의 방침이 학군제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를 사귈만하면 언제나 이별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래서 더욱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줄곧 성적이 좋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마치 캐네디가의 원칙처럼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점은 거친 당시의 세상 속에서 사업가로 어느 정도 성공했던 아버지 스스로가 지켜온 원칙이었다.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아버지의 이런 점은 음악을 하려는 나에게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어머니는 그때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빼어난 미인이었던 용모만큼이나 정이 많아 늘 사업으로 집에 있을 날이 없는 아버지의 공백을 우리의 성장기간동안 대신 채워주었다. 그런 어머니가 아버지와 다투고 마당 한켠에서 울때면 나도 괜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퍼졌다.

아무튼 엄격한 아버지 덕으로 이듬해 나는 명문 보성중학에 입학했다. 그것도 전교 4등이라는 좋은 성적이었다. 첫번째 등교날,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반에서 1등이니까 반장을 맡으라는 거였다. 그렇게해서 나는 중학시절동안 내내 반장을 맡게 되었다. 물론 나중에는 성적이 나빴는데도 말이다.

중학교때 나는 처음으로 기타와 만났다. 나무통에 쇠줄을 붙인 단순한 악기가 아닌 지금까지 내 삶의 전부가 된 '살아있는 음악'과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만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선천적 재질이 있었던지 고등학교 다니던 사촌형이 간단한 지도로도 나는 웬만한 곡을 반주할 수 있게 됐다.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 그때부터 나는 어디가서나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박인수선배의 <봄비>, 비틀스의 <오! 달링>, CCR의 <프라우드 메리>등이 나의 단골 애창곡이었다.

그러나 기타를 치며 노래부르는 것이 행복해질수록 서서히 성적은 떨어져 갔다. 더욱이 운동을 좋아했던 내가 스케이트부에 들어가면서부터 성적은 전교 150등까지 급강하했다. 나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서 점점 기타나 스케이트를 메고 껄렁대며 다니는 문제아로 변해갔다 급기야 당시 한창 세력다툼이 치열하던 보성과 중동의 싸움판에도 끼여들게 되었다 그 싸움판에서도 유감없이 나는 어린 시절의 독기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독종으로 이름을 날렸다.

중학교 시절 가장 기억에 남은 사람은 1학년때와 3학년때 담임이었던 임선생님이다. 그분은 처음 반1등으로 들어간 나에게 많은 기대를 가졌었다.

그러나 3학년이 되어 다시 담임을 맡아보니 성적도 형편없는 갈데없는 건달이 바로 나였으니 무던히도 나를 야단치셨고 빗나가려는 나를 바로 잡으려 애쓰셨다. 임선생님의 꾸중을 들을때면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다짐도 했으나 그때뿐이었다. 나는 다시 스케이트와 가타와 주먹질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러던 나에게 어느날 일이 닥쳤다. 간장공장을 운영하시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당시 나에게 아버지의 사업실패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로인한 경제적 여파가 아이스하키 선수로서의 나의 꿈을 좌절시킨 것이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당시 아이스하키는 웬만큼 가정이 유복하지 않고는 할수 없는 운동이었다. 아마 아버지가 그때 사업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선수나 아니 서른넷의 나이면 코치가 되어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곤 임선생님의 간곡한 설득과 뭔가 다시 몰두할 것을 찾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사실 고등학교 입학시험도 얼마남지 않았었다.

성적은 거짓이 없어 노력하는 만큼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서서히 전교석차를 발표하는 게시판에도 내 이름이 오르기 시작했고 3학년말에 가서는 전교 30등까지 오를 수 있었다.

드디어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게 됐다. 비교적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린 나는 우쭐해지는 기분에 자신있게 최고의 명문 경기고에 원서를 넣고 시험을 쳤다. 학교에서의 합격예상은 반반이었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시험도 별반 어려운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시험을 마친후 집에 와서 나는 밤새 명문고에서 풀어갈 고교생활을 낭만적으로 꿈꾸어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보기좋게 낙방이었다. 또다시 나는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린 좌절과 방황을 시작했다. 수유리 집주변의 논둑에 가서 밤새 기타를 치며 울부짖기도 했고 술과 담배도 조금씩 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보기 무서워 며칠씩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친구집에서 보내는 경우도 많아졌다.

묘하?鍍?이때 나는 첫사랑을 시작했다. 상대는 나보다 나이가 두살 위인 숙명여대 2학년 학생이었는데 연상의 여인이었던 셈이다. 그녀는 어느날 공원에서 기타를 치고 있던 나에게 다가왔다.

 
 

 

 

그를 기억하고자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2001년 01월 21일 ~ 2019년 04월 22일… … 전체방문자 252,808  오늘 7…

 

   

제목 없음

 

  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등록 | 검색  

 

  알림글

김현식님 비디오파일 상시 공개...
첫번째 길거리모임 초대문
잠정적으로 몇개의 게시판을 폐...

  애청곡 BEST 10

ㆍ내 사랑 내 곁에

 제6집

ㆍ비처럼 음악처럼

 제3집

ㆍ사랑했어요

 제2집

ㆍ추억 만들기

 제6집

ㆍ사랑했어요

 제6집

ㆍ어둠 그 별빛

 제2집

ㆍ이별의 종착역

 제6집

ㆍ언제나 그대 내 곁에

 제4집

ㆍ추억 만들기

 제8집

ㆍ아무말도 하지 말아요/신...

 기타

  최신글

한남과 코르셋은 싫지만
다들 잘 계시죠
어느덧.......
술한잔 기울리면......
너무너무 오랜만에 들렀네요.[1]

  최신 덧글

김현식형님을 알게 된지 한달...
의도한건 아닌데, 무슨일이 ...
안녕하세요. 운영자님 반갑습...
김현식 아저씨를 존경하는 학...
벌써 왔다가셨군요. 내년엔 ...